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닛타 요시사다 (문단 편집) == 거병 == 겐코 원년([[1331년]])부터 겐코의 변에서 닛타 요시사다는 [[가마쿠라 막부]]에 속했고, 가와치 국에서 거병한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지하야 성 전투에 참가하였지만, 곧 병을 이유로 무단으로 자신의 영지인 닛타 장원으로 돌아갔다. 이 이유 중 하나는 닛타 장원에 대한 막부측의 과도한 군비 요구와 강압적 집행이었고다고 하며, 이때의 일은 닛타 요시사다가 거병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고 사료된다. 《태평기》와 《매송론》에서는 병을 핑계로 닛타 장원에 숨어 있던 요시사다가 닛타 장원에 조사하러 온 막부의 징세사 가네자와 이즈모노스케[* 싯켄 호조 가문의 가신인 기 씨(紀氏)쪽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와 구로자와 히코시로를 포박해 가네자와 이즈모노스케는 유폐시키고 구로자와 히코시로를 살해한 후, 거병을 결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겐코의 변에서 막부군에 속해 출병하던 중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 고다이고 천황의 황자로 무예에 뛰어났으며 출가해 승려가 되었으나 아버지가 막부 타도를 외치며 거병했을 때 환속해 아버지를 도왔다. 함께 막부를 타도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위험인물로 보아 경계하였으나 아버지와의 불화(정확히는 아버지의 후궁인 아노 렌시와의 불화였다)로 황위 찬탈의 혐의를 쓰고 가마쿠라에 유폐되었고, 얼마 안 가서 살해되었다. 호사가들 중에서는 황족의 대표로써 그 자신이 무력을 지니고 있었던 모리요시 친왕이 죽지 않고 고다이고 천황이 그에게 천황의 자리를 이어받게 했다면 가마쿠라 막부 타도 이후 일본의 역사가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으로부터 호조 가문을 타도하라는 밀명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겐코 3년/쇼코 2년(1333년) 음력 5월 8일 [[고다이고 천황]]의 부름에 응해 이쿠시나 신사에서 일가 친지를 모아 가마쿠라 막부 토벌을 기치로 거병하였다. 처음 모은 군은 겨우 150 기에 불과했다고 한다. 당초에는 도네 강을 건너 일가 친지가 있는 에치고 방면으로 진군할 예정이었지만, 동생 와키야 요시스케의 의견을 받아들여 가마쿠라로의 진격을 결의했다고 한다. 에치고의 일가 친지도 가세하여 닛타 군은 도산도 서쪽으로 진격해 고즈케 슈고의 관아를 장악하고, 도네 강을 건널 무렵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적장자 아시카가 센주오(후에 [[아시카가 요시아키라]]) 군과 합류하였다. 호조 가문과의 먼 친척관계인 유력 고케닌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적장자가 가세함으로써 주변 고케닌도 힘을 모아 닛타 군의 규모는 수 만을 헤아를 정도의 대군으로 변모했다. 더욱이 닛타 군은 가마쿠라 가도를 따라 이루마 강을 건너 고테사시하라(현 도코로자와 시)에 도달하였고, 이 곳에서 사쿠라다 사다쿠니, 가네자와 사다마사가 이끄는 막부군과 격돌한다. 이 고테사시하라 전투에서 막부군이 승리하지만, 막부측에 불만을 품은 가와고에 가문(河越氏) 등 무사시 국의 고케닌들이 닛타 군을 지지하였고, 이로 인해 막부군은 열세에 놓여 부바이가와라(현 후추 시)까지 퇴각하였다. 막부군은 다시금 부바이가와라에 진을 치고 포진해 닛타 군과의 결전에 돌입했다. 이 부바이가와라 전투에서 닛타 군은 대패하였지만, 다음 날 원군으로 가세한 오타와 요시카쓰 군과 함께 막부군을 격파하였다. 이는 아마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로쿠하라 단다이 제압 소식을 들은 막부군의 증원대가 배신과 내부 분열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날 세키토(현 다마 시)에서 닛타 군은 막부군을 완전히 몰아내 승리하였다. 후지자와(현 후지자와 시)까지 진출한 닛타 요시사다는 군을 3방면으로 나누어 가마쿠라로의 총공격을 감행한다. 고쿠라쿠지(極樂寺) 방면 군이 주춤하자 요시사다는 간조를 이용해 이나무라가사키로 상륙, 막부군의 배후를 파고 들어 가마쿠라로 난입하였고, 이 도쇼지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이 전투 중 [[호조 타카토키]] 일가는 도쇼지에서 자결하고, 타카토키의 적남 [[호조 쿠니토키]]도 가마쿠라 탈출을 시도하던 중 자신의 외삼촌 [[고다인 무네시게]]에게 배반당해 닛타군에 붙잡혀 처형된다. 거병한 지 겨우 보름 만에 가마쿠라 막부를 멸하였으나, 가마쿠라 함락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적장자 아시카가 센주오 보좌를 위해 파견된 호소카와 가즈우지, 호소카와 아키우지와 마찰을 빚어 갈 곳을 잃은 요시사다는 교토로 상경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